귀납적 태도와 부단한 자기부정으로 본질 추구하기
김재일 (칼빈대 설교대학원 1기)
자서전 ‘유진 피터슨’은 목사로서 소명을 깨닫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소명에 따라 외길을 걸으며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담금질을 계속했던 삶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만나는 유진 피터슨의 인격적 특징은 정직, 열린 마음, 소명, 성실, 겸손, 진지, 헌신, 순수, 그리고 일관성이란 용어로 묘사할 수 있겠다.
저자는 그의 삶 전체를 통해 목표나 답을 먼저 정해 놓고 그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에 마음을 비운 상태로 진지하게 접근해 본질을 깨닫고, 해답을 찾아가는 귀납적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배 먼저 갈라놓고, 수술이 옳다’고 주장하는 식으로 먼저 목적을 정해 놓고 밀어붙이는 조급한 현 세태와 비교해 볼 때, 그의 상상력과 행태(behavior)의 여유로움은 참신한 느낌을 준다.
일생을 통해 영혼의 고향이었던 몬태나의 풍성한 자연 환경과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노래와 이야기로 그를 키웠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을 법하다.
정체성과 소명 깨닫기
저자가 평생을 통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소명’ 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목사의 정체성과 소명을 깨닫는 과정은 시니컬하기까지 하다. 그의 표현을 빌면, ‘신학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신학교에 들어갔다’ ‘모르는 사이에 목사가 되었다’ ‘자신이 목사였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등이다.
그는 책의 중반 대목에 이르러 비로소 목사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을 깨닫는다. 그 전까지는 마음을 열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하는 일과 사건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측면을 차치한다면, 이같은 행태는 그의 귀납적 삶의 자세를 말해 준다.
소명과 관련한 그의 기술을 살펴보자. 목사는 사람을 문제로 대하는 것이 최우선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상담가의 역할이다. 목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도록 그들을 부르는 사람이다. 그는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사람들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대하는 목사가 아니라, 사람들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다루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는 목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그 사람들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축소시킨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과 그들의 영혼, 그리고 목사의 소명을 배제시킨 것이라는 자각이었다.
목사의 소명과 관련해 그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도가 모든 것의 핵심’이라고 고백한다.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대화와 교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목사의 소명은 전적으로 성경 본문에 근거해서 이해해야 한다. 일요일의 성경 본문을 통해서 목사와 회중은 구원 공동체로 형성된 하나님의 백성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는다고 말한다.
그는 소명을 지키기 위해 철저하게 예배와 공동체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게 목사는 ‘고유한 소명’이며, 목사의 고유성을 지킬 수 있게 해 준 것은 예배와 가족이었다.
연속적 자기 부정으로 지평 넓히기
저자는 아버지를 도와 정육점 일을 하면서 성경의 제사 분위기를 남들과는 다르게 파악하고, 두 모습을 지닌 벤 삼촌의 죽음으로 인해 도덕적 삶과 영적인 삶의 모호함에 대해 고민한다.
칼 바르트의 영향으로 먼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복음을 실제로 살아내는 것에 주목했다.
그가 지녔던 열린 마음과 귀납적 행태, 그리고 강렬한 지적 욕구는 평생을 통해 어떤 사람이나 책, 사건과 만나도 그 경험을 자신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으로 흡수할 수 있는 토양인 셈이다.
이렇듯 자서전을 통해서 보는 유진 피터슨의 가장 큰 특장(特長)은 놀라운 지적 포용력이다. 그는 연속적인 자기 부정과 고정관념 깨뜨리기를 통해 자신의 지평(horizon)을 넓혀간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장과 결부된 지식이다. 현장 경험과 삶의 체험을 통해 체득한 산지식이어야 한다. 그는 책에서 얻은 영감이나 개념도 목회 현장에 적용해서 그 정당성을 입증하는 과정을 거쳐 삶의 지표로 삼는다.
탁월한 연사로 평판이 있었으나 목회 경험이 고작 일 년이었던 한 목사가 쓴 책들의 오류가 빈약한 목회 경력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고, 그의 책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한데서 유진 피터슨이 현장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교회 회중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 자신과 회중 사이에 공통점이 별로 없었고, 그의 기대와 너무 달랐다고 말한다. 교회 세우는 것과 관련해서는 생각했거나 기대했던 것이 거의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에게는 ‘다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어찌 그 일에 국한 될 것인가. 유진 피터슨에겐 평생이 배움의 연속이었다. 그의 일생은 배움을 통한 지평 넓히기의 과정이다.
그의 태도는 얼핏 뚜렷한 목적의식이나 비전, 혹은 전략이 없이 닥치는 대로 대응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아마 그것은 귀납적 삶의 태도를 지닌 유진 피터슨의 본 모습일 것이다.
'회중은 깨달음을 주는 공동체’
하지만 그의 깨어있는 지성과 현장과의 대화 습관은 서로 긴밀하게 작용하면서, 그로 하여금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도록 만든다. 그 크고 작은 깨달음들은 축적되어 인격화하고, 교회를 통해 구현되고, 저술을 통해 더 큰 범위의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보자. 저자가 목사로서 첫 임지인 시글락의 지하실 예배당은 말 그대로 어두침침한 분위기로 그려진다. 회중에 대한 실망, 자신의 부적응, 교회의 참 모습에 대한 혼란......
그러나 그는 결국 그 ‘카타콤 장로교회’에서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과 함께 회중에 대해서도 분명한 이해를 하기에 이른다.
그는 사도행전을 통해 성령이 펼치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그의 카타콤 교회에 있는 회중에게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그와 회중은 ‘서서히 빛나는 진리처럼 교회의 정체성을 획득’해 갔다.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성령이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 성령의 방식으로 교회를 세우신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 ‘아주 새로운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께 자신을 굴복해 가는 법을 배웠다.
유진 피터슨의 삶에 있어서 소명을 따른 목회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면, 회중은 그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존재였다. 처음에는 파악하기 어렵고 거치장스러운 장애물 정도로 인식되었던 회중은 차츰 그에게 여러 가지 형태의 깨달음을 주고, 목회적 사명을 완성시키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공동체로 다가온다.
그는 인간과 사회의 복잡성을 교회 회중을 통해 이해하게 되고, 회중과의 ‘참여적 대화’를 통해 복음의 본질을 확인하게 된다. 회중은 그에게 진리를 입증하는 실험장이고, 검증된 진리를 실천하는 공동체였다.
회중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애정으로 그들을 보듬어 문제를 해결해 가는 진정한 목자의 모습을 그에게서 볼 수 있다.
결벽적 순수성 지키기
유진 피터슨은 근본적으로 정직하고 순수한 인물이다. 그는 결벽에 가까운 순수성을 지녔다. 그는 교회와 목사의 소명이 사업 운영의 관점에서 가차없이 축소되고 부패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분노한다.
그는 상업적 마케팅 기법을 도입해 교회를 소비자 친화적으로 만들고, 하나님을 탈인격화해 편의주의로 흐르는 교회 풍조를 거부한다. 그에게 그런 풍조는 그의 정체성을 형성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며, 교회가 그에게 부여해 준 삶의 방식을 모독하는 것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심리조작을 하지 않는 예배와 프로그램 없는 공동체를 고집한다.
저자는 미국 교회 안에 매우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는 교회의 규모에 대한 탐욕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교회 성장’이라고 불리는 현상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데, 그 용어가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차라리 ‘암’에 가깝다고 규정한다. 치명적인 질병의 성장, 몸의 건강과 균형을 공격하는 세포의 폭발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는 군중이 술이나 섹스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목사만큼은 회중을 규모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해 갈 수 있는 군중이 아닌 공동체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문뜩 일에 매몰되어 시간에 쫓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즉시 목사직 사임을 결심한다. 그리고 논의를 통해 교회 운영을 장로들에게 위임한다.
결벽적이랄 수 있는 이같은 행태는 순수성을 지켜, 목사의 소명과 양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려는 몸부림이다.
작가의 소명과 본질 추구
유진 피터슨은 자신의 소명과 관련해 두 가지 역할, 즉 목사와 작가로 스스로를 포지셔닝(positioning)한다. 그리고 밧모섬의 요한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는다.
평생을 한 눈 팔지 않고 소명에 따라 성실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을 추구해온 그는 점차 깊은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갔다. 그리고 체득한 정신세계와 영성을 세상과 공유하기 위해서 그가 글쓰기에 나선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선교 측면에서도 바람직스러울 것이다.
그는 글쓰기와 작가의 소명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진 듯하다. 그가 내린 글쓰기의 정의는 성경과의 대화일 뿐 아니라 회중과의 대화다. 목사와 작가의 공통 기반은 언어의 신성함이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목회적 삶의 본질 속으로 들어간다.
유진 피터슨의 행태적 특징은 항상 본질에 천착(穿鑿)한다는 점이다. 그의 주된 관심은 소명, 영혼, 성령, 기도, 성경, 회중이다.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색은 ‘하나님과의 대화’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가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했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는 어떤 문제, 사건과 만나더라도 고민하고 방황하고 갈등한 후에는 반드시 ‘근본으로 돌아가’ (Return to the basic.) 해답을 찾는다. 그의 생각과 생활을 철저하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 살면서 체득한 습관으로 보여진다.
이와 관련해 저자가 니체의 ‘한 방향으로 꾸준히 순종하기’를 자신의 삶에 적용해 체화한 것은 흥미롭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자신과 싸울 뿐 아니라, 깨달음들을 현장을 통해 확인해 가면서 그는 더 깊은 영성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을 것이다.
유진 피터슨은 영성 분야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나 그 문제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다. 깊은 영성, 이 또한 그가 자신의 소명과 과업에 충실함에 따라 주어진 ‘귀납적’ 결과물일 것이다.
소명에 충실한 순례자의 삶
유진 피터슨의 넓고도 깊은 지식과 영성은 하나님을 향한 강한 헌신, 인간 영혼에 대한 뜨거운 애정, 그리고 열린 마음에 기인한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신앙의 일반적 속성으로 볼 때 신앙인들은 연륜이 깊어질수록 독선과 종파주의에 빠지기 쉽다. 반면 유진 피터슨은 부단한 자기 부정과 귀납적 삶의 자세를 통해 자신의 지평을 꾸준히 넓혀갔다.
그는 ‘목사가 되어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엉망진창인 것’이라고 대답한다. 소명을 따라 살면서 넘어지고, 방황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거쳤던 그로선 자신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표현한 것이 어쩌면 당연할런 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노력해온 그임을 감안한다면, 그같은 표현은 제 3자가 볼 때 지나친 겸손으로 보인다. 그는 분명 연구와 기도, 그리고 회중과의 대화를 통해 본질을 깨닫고, 누구보다도 소명에 충실한 순례자의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통상 자서전의 내용이란 은근히 자기 자랑하기가 다반사다. 하지만 ‘유진 피터슨’에서는 그런 기색을 발견할 수 없다.
그는 의도적으로 종교적 표현을 배제하고 객관적 용어로 자서전을 기술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그가 기술한 삶의 궤적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이끌려왔음을 독자에게 인식시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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